HMAP World Story
이상화 (1901-1943)
이상화는 일제 강점기의 시인, 작가, 독립운동가, 문학평론가, 번역문학가이며, 교육자, 권투 선수이기도 하다. 1919년 대구에서 3·1 운동 거사를 모의하다가 모의가 발각되어 피신하였으며, 1921년 잡지 백조의 동인이 되어 문단에 등단하였다. 이후 1922년 일본으로 건너가 미국 유학을 준비하다가 관동 대지진으로 귀국하였다. 귀국 이후 시와 소설 등 작품 활동과 평론 활동, 《개벽》, 《문예운동》, 《여명》, 《신여성》, 《삼천리》, 《별건곤》, 《조선문단》, 《조선지광》 등에 동인 활동을 하였다. 아마추어 권투 선수로서 교남학교 교사로 재직 중 1938년에는 교남학교 권투부를 창설, 지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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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 Sanghwa (1901-1943)
Yi Sang-hwa, who sometimes published under the names Muryang, Sanghwa, and Baega, was born May 22, 1901, in Daegu. but graduated from Jungdong High School in Seoul. He then went to Japan, where he studied French literature. In 1923 he returned to Korea and taught English and French in a Daegu high school. According to Choe Chong-dae, "His reputation grew as a young promising poet after composing the poem entitled 'Does spring come to these stripped lands?' in 1926, which was published in the 70th edition Magazine of Kaebyuk," the contents of which led to the magazine being suspended by the authorit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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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Yi Sanghwa's Old House / 이상화 고택
이상화 고택
이상화 고택은 1999년부터 고택을 보존하자는 시민운동을 시작으로 군인공제회에서 인근 주상복합아파트를 건립하면서 고택을 매입해 지난 2005년 10월 27일 대구시에 기부하여, 대구시는 그동안 고택을 보수하고 고택보존시민운동본부에서 모금한 재원으로 고택 내 전시물 설치를 하였다. 이상화 고택은 암울한 시대를 살면서 일제에 저항한 민족시인 이상화의 정신을 기리고, 후손에게 선생의 드높은 우국정신과 문학적 업적을 계승하는 교육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자세히보기]출처 : 대구광역시 중구
Yi Sanghwa's Old House
The movement to preserve the old home of Sang-hwa Lee culminated with the Military Mutual Aid Association purchasing and donating the building in 2005. Daegu City has reconstructed and completed setting up displays within the home. The house of Sang-ha Lee honors the nationalistic mind that prevailed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and will continue to serve as an important educational site.
[Learn more]Source : DAEGU METROPOLITAN CI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