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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광조 (1482-1519)
김종직의 학통을 이어받은 김굉필의 문하에서 수학하다 유숭조의 문하에서도 수학했다. 사림파의 정계 진출을 확립하였다. 중종의 훈구파 견제 정책에 의해 후원을 받아 홍문관과 사간원에서 언관 활동을 하였고, 성리학 이론서 보급과 소격서 철폐 등을 단행하였다. 성리학적 도학 정치 이념을 구현하려 했으나 훈구 세력의 반발로 실패한다. 1519년 반정공신들의 사주를 받은 궁인들에 의해 나뭇잎에 주초위왕(走肖爲王)이란 글자가 나타나게 함으로써 역모로 몰려 전라남도 화순으로 유배되었다가 사사된다. 후에 기묘명현(己卯名賢 ) 중 한 사람이다. 개혁 정책을 펼치다가 희생된 개혁가라는 시각과 급진적이고 극단적이라는 평가가 양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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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 Gwangjo (1482-1519)
Jo Gwangjo was Korean Neo-Confucian scholar who pursued radical reforms during the reign of Jungjong of Joseon in the early 16th century. He was framed with charges of factionalism by the power elite that opposed his reform measures and was sentenced to drink poison in the Third Literati Purge of 1519. He has been widely venerated as a Confucian martyr and an embodiment of "seonbi spirit" by later generations in Korea. Some historians consider him one of the most influential figures in 16th century Korea. He's one of the 18 Sages of Korea and honored as Munmyo Baehy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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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묘사화 (1519)
연산군 축출 이후 중앙 정계에 진출했던 진보적 사림파들이 신권 대부분을 장악하고 왕권을 위협하자, 위기의식을 느낀 중종이 신권을 견제하기 위해 벌였다. 이 사건으로 인해 조광조, 김식, 기준, 김정, 한충 등이 극형을 당했고 나머지 사림들도 대부분 귀양가거나 정계 진출이 좌절되었다. 이 밖에 김안국, 김정국 형제, 정광필, 안당 등 이들과 친분 관계가 있던 조정 중신들도 피해를 받았다. 이 사건으로 사림의 중앙 정치 진출은 한 세대 밀렸다. 흔히 '주초위왕(走肖爲王)'이라는 문구가 기묘사화의 일화로 널리 알려졌지만 연구 결과 후대에 만든 루머임이 밝혀졌고, 실제로는 중종의 친위 쿠데타다. 단순히 비유가 아니라 실제로 중종은 사화를 일으키기 전에 조광조 일파로의 정보 전달을 차단하고 몰래 숙정문으로 군 병력을 소집하여 조광조 세력을 긴급체포하였다. 2. 발생 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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