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개항 (1876, 인천)
개항 이후 민씨 정권은 일본과 청나라에 각각 신사유람단과 영선사를 파견하여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이는 등 적극적으로 문호 개방에 힘썼다. 그런데 불평등조약에 의해 일본과의 무관세(無關稅) 무역이 실시되어 서양 물건들이 쏟아져 들어왔고 이에 대한 대가로 국내의 곡물과 금·은이 대량으로 유출되었다. 무관세로 들어온 서양의 물건들은 조선의 수공업자층을 몰락시켰고 곡물과 금은의 유출은 물가를 급등시켰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서 소작농민, 중소상인, 수공업자 계층이 몰락해갔다. 특히 쌀의 수출은 농민층의 몰락을 초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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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opening port of Joseon (1876)
Up until 1876, the Joseon dynasty closed its doors and ostracized Western people, looking down on them. This assertion was led by Heungseon Daewongun, father and regent of King Gojong and his ideology of "protecting justice and ostracizing injustice" (uijeong cheoksa). They regarded a Neo-Confucian philosophy-based order as a righteous one while considering Western ideas and socio-political systems as unjust on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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