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시스코 피사로 (1471-1541)
....당시 잉카 제국의 황제였던 아타우알파는 피사로가 그의 영토에 감히 침범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으나, 1532년 11월에 피사로 일행에 의해 포로로 잡히게 되며 상황이 역전되고 말았다. 아타우알파는 피사로에게 방에 가득 들어찰만큼의 황금을 주는 조건으로 자신을 살려줄 것을 빌었고, 또 실제로도 그렇게 하였으나 1533년에 피사로에 의해 사형당하고 만다. 1535년 1월에 그는 현재 페루의 수도 리마를 세웠으며 이를 자신의 최대 업적으로 평가했다. 한편, 피사로는 그와 함께 잉카 정복에 나섰던 일행 중 하나인 디에고 알마그로와 내분이 일어나게 되면서 결국 전투까지 치르게 되고, 여기서 패배한 디에고 알마그로는 포로로 잡혀 사형당했다. 이후 이에 앙심을 품은 알마그로의 아들이 1541년 6월에 피사로를 리마에서 살해함으로서 파란만장했던 생애도 끝나게 된다. 그의 유해는 리마 대성당에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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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ancisco Pizarro
Born in Trujillo, Spain to a poor family, Pizarro chose to pursue fortune and adventure in the New World. He went to the Gulf of Urabá, and accompanied Vasco Núñez de Balboa in his crossing of the Isthmus of Panama, where they became the first Europeans to reach the Pacific Ocean. He served as mayor of the newly founded Panama City for a few years, and undertook two failed expeditions to Peru. In 1529, Pizarro obtained permission from the Spanish crown to lead a campaign to conquer Peru and went on his third, and successful, exped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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