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gju
Jeong Giryong
鄭起龍 (1562-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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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룡 (1562-1622)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별장으로 승진해 경상우도방어사 조경(趙儆)의 휘하에서 종군하면서 방어의 계책을 제시하였다. 또한 거창싸움에서 왜군 500여명을 격파하고, 금산싸움에서 포로가 된 조경을 구출했고, 곤양 수성장이 되어 왜군의 호남 진출을 막았다. 이어 유병별장이 지내고, 상주목사 김해의 요청으로 상주판관이 되어 왜군과 대치, 격전 끝에 물리치고 상주성을 탈환하였다. 1593년 전공으로 회령부사에 승진하고, 이듬해 상주목사가 되어 통정대부에 올랐다. 1597년 정유재란 때에는 토왜대장으로서 고령에서 왜군을 대파하고, 적장을 생포하는 등 큰 전과를 올렸다. 이어 성주 · 합천 · 초계 · 의령 등 여러 성을 탈환하고 절충장군으로 경상우도병마절도사에 승진해 경주 · 울산을 수복하였다. 1598년 명나라 군대의 총병직을 대행해 경상도 방면에 있던 왜군의 잔적을 소탕해 용양위부호군에 오르고, 이듬해 다시 경상우도병마절도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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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Jeong Giryong (1562-1622)

Jeong Ki-ryong was a prominent Korean general during the Joseon period. He fought against the 1592–1598 Japanese invasions of Korea, and won the battles of Geochang and Geumsan. He was one of those who recaptured the Sangju castle, captured the Japanese general in Goryeong, and recaptured Seongju, Hapcheon, Uiryeong, Kyungju and Uls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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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Wikipedia




ⓢ 정기룡 장군 유적 (충의사)



정기룡 장군 유적

유적은 충렬사 · 신도비 · 묘소가 있다. 충렬사는 장군의 사당으로 원래는 정면 3간의 목조 건물이었다. 1978년 정부의 호국선현유적사업으로 사당을 재건하고, 내외 삼문 · 전시실 · 관리실 등을 신축하는 등 주위를 정화하여 1979년에 사업을 완료하였다. 신도비는 송시열이 글을 짓고 이세재가 글을 썼으며, 김수용이 전하였다. 전체 높이 370㎝, 폭 130㎝, 두께 42㎝으로, 귀부와 이수를 갖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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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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