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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백 (?-660)
계백의 출생과 초기 생애에 대해서는 자세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지만 《삼국사기》에는 의자왕 때 달솔의 관등에 올라 군사를 지휘한 장군으로 기록되어 있다. 660년 신라의 김유신이 이끄는 약 5만 명의 군대가 당나라 군대와 함께 백제를 공격하자, 계백은 약 5천 명의 결사대를 이끌고 황산벌에서 신라군을 맞았다. 그는 전투에 앞서 가족을 적군에게 넘겨줄 수 없다는 판단으로 아내와 자녀를 직접 죽이고 출전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이후 계백의 군대는 네 차례에 걸쳐 신라군의 공격을 막아내며 치열하게 저항했지만, 어린 화랑 관창의 죽음을 계기로 사기가 높아진 신라군의 공격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패배하였다. 계백 역시 이 전투에서 전사했다. 계백은 백제의 마지막 순간까지 싸운 장군으로서 충절과 결사 항전의 상징으로 기억되고 있다. 특히 열세한 병력으로 압도적인 신라군에 맞서 끝까지 싸웠다는 점 때문에 후대에는 백제의 충신이자 비운의 영웅으로 평가되었다. 그의 최후를 장식한 황산벌 전투는 백제 멸망 과정에서 결정적인 전투로 역사에 남아 있다.
Gyebaek (?-660)
Gaebaek was a general in the ancient Korean kingdom of Baekje during the early to mid 7th century. Little else is known of his personal life—including the year and location of his birth. However, as a teenager, he was put into slavery and working in Silla. He escaped after a battle against Silla and Baekje.
[Learn more]Source : Wikipedia
ⓢ Historic Site of General Gyebaek / 계백장군 유적지

계백장군 유적지
백제 말기 성충(成忠)·흥수(興首)와 더불어 백제 3충신으로 꼽히는 계백의 유허지로 최후의 결전장이던 황산벌과 가까운 곳에 있다.1966년 묘를 발견할 당시, 봉분이 반 이상 붕괴되어 내광이 노출되었으며 광벽까지 일부 파손된 채 방치되어 있었는데 부적면 사람들이 지석(支石)을 안치하고 내광회벽을 완봉한 후 봉분 둘레 47.6m, 지름 15.15m, 높이 6.5m로 복묘하였다.
[자세히보기]출처 : 한국관광공사
Historic Site of General Gyebaek
Gyebaek (? - 660) was a general in the ancient Korean kingdom of Baekje. This historic site is not far from Hwangsanbeol, the last battlefield of General Gyebaek who fell defending Baekje at the end of its days. Allied troops from Silla and Tang attacked Tanhyeon and Baekgang, strategic sites held by Baekje, in 660 (the 20th year of King Uija’s reign).
[Learn more]Source : KOREA TOURISM ORGANIZ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