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
세르게이 코룔로프
Sergei Korolev (1907-1966)



세르게이 코룔로프 (1907-1966)

세르게이 파블로비치 코롤료프는 1950~1960년대에 있었던 미국과 소련의 우주 개발 경쟁 중의 소련의 수석 로켓 기술자·개발자였다. 코롤료프는 비행기 개발자로서 교육받았으나, 개발과 통합, 조직과 전략 계획에 특별한 재능을 발휘하였다. 스탈린의 1938년 대숙청에 희생되어 6년간 구속되었으며, 소비에트 연방 시베리아의 굴락에서 수개월을 보내기도 했다. 풀려나면서 로켓 개발자가 되었고, 소련의 대륙간 탄도 미사일(ICBM) 개발의 주요 역할을 담당하였다. 그는 소련의 우주 계획을 이끌도록 지명되었고, 학술원 회원(소련 과학 아카데미 회원)의 자격이 주어졌으며, 성공적인 스푸트니크 계획과 보스토크 계획을 감독하였다. 그는 미국과 함께 달에 인간을 보내는 경쟁이 실행에 옮겨지기 시작한 1966년 갑작스런 죽음을 맞이하였다.

[자세히보기]

출처 : Wikipedia

Sergei Korolev (1907-1966)

Sergei Pavlovich Korolev was the lead Soviet rocket engineer and spacecraft designer during the Space Race between the United States and the Soviet Union in the 1950s and 1960s. He invented the R-7 Rocket, Sputnik 1, and was involved in the launching of Laika, Sputnik 3, the first human-made object to make contact with another celestial body, Belka and Strelka, the first human being, Yuri Gagarin, into space, Voskhod 1, and the first person, Alexei Leonov, to conduct a spacewalk.

[Learn more]

출처 : Wikipedia



ⓗ Sputnik 1 (1957.10.4) / 스푸트니크1호



스푸트니크1호 (1957.10.4)

스푸트니크 1호는 소련이 1957년 10월 4일에 타원형의 지구 저궤도로 발사한 최초의 인공위성이다. 스푸트니크 1호의 성공은 미국의 스푸트니크 쇼크를 촉발시켰고, 우주시대와 우주경쟁의 방아쇠를 당겼으며, 냉전기의 정치 상황에도 영향을 주었다. 스푸트니크 1호의 발사는 새로운 정치, 군사, 기술 및 과학발전을 이끌었다. 스푸트니크 1호는 과학적으로 중요한데, 위성의 궤도에 영향을 미치는 공기저항으로 지구 대기권의 밀도를 추측할 수 있었고, 무선신호의 전파는 전리층에 대한 정보를 가져다주었다.

[자세히보기]

출처 : Wikipedia

Sputnik 1 (1957.10.4)

Sputnik 1 was the first artificial Earth satellite. It was launched into an elliptical low Earth orbit by the Soviet Union on 4 October 1957 as part of the Soviet space program. It sent a radio signal back to Earth for three weeks before its three silver-zinc batteries became depleted. Aerodynamic drag caused it to fall back into the atmosphere on 4 January 1958.

[Learn more]

Source : Wikipedia


  •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h·map story

my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