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제우 (1824-1864)
최제우는 경주 출신으로 혼란한 조선 말 사회에서 백성의 고통을 목격하며 새로운 길을 모색했다. 1860년 경주 용담에서 깨달음을 얻고 "시천주(하느님을 모신다)", "인내천 (사람이 곧 하늘이다)"라는 핵심 사상을 전개하며 동학을 세웠다. 동학은 유교, 불교, 선교(仙敎)의 가르침에 민족 고유의 신앙을 통합한 민족적 성격이 강한 종교이다. 최제우는 백성들에게 내세보다 현실의 고통을 해결하는 "새로운 길"을 제시하며 많은 지지를 얻었지만, 기존 유교 지배층과 조정은 이를 사교로 규정하고 최제우를 혹세무민의 죄목으로 1864년 대구에서 처형하였다. 사후 그의 제자 최시형이 교단을 이어받아 동학을 전국적으로 확산시켰다. 최제우가 남긴 사상은 1894년 동학농민운동의 사상적 기반이 되었고, 이후 천도교로 계승되어 한국 근대 민중운동과 민족운동의 중요한 정신적 원천이 되었다.
Choe Jeu (1824-1864)
Choe Je-u, who used the pen name Su-un, was the founder of Donghak, a Korean religious movement against foreign invasions and critical of Joseon Dynasty government policies of the time. His teachings led to peasant revolts in Korea which were contemporary with the Taiping Rebellion in China, and he was martyred by order of the Daewongun, only weeks before the death of Hong Xiuqu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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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Yongdamjeong / 용담정

동학
1860년 수운 최제우가 깨달음을 얻고 조선에서 창건한 사상. 그리고 현재 천도교를 비롯한 여러 민족 종교의 모태이다. 최제우는 조선인들이 세상의 중심이라 믿어 사대해 왔던 중국이 서방의 영국에게 패한 것에 국제정세가 바뀌고 있는것을 알았다. 게다가 말기 조선의 여러 사회적 모순을 기존의 지배 이념이었던 유교만으로 헤쳐나가기 힘들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바야흐로 격동기 조선에서, 구 시대의 사대주의적 외래 학문인 유교(북학)도 아니고, 한때 융성하였으나 조선 시대에 와서는 숭유억불 정책 속에 쇠퇴한 불교(남학)도 아니며, 서방 선교사를 통해 들어와 침략전쟁을 대표했던 그리스도교(서학)도 아닌, 새시대[2]를 위한 개혁과 새로운 학문의 필요성, 한민족 고유의 신앙을 통한 정신적 결집의 필요성을 느꼈다. 이러한 절실함 속에서 지극히 사람 중심의 학문이 만들어졌으며, 이를 서학과 반대되는 학문이라 하여 '동학'이라 명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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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ngdamjeong
Donghak (Eastern learning) was an academic movement in Korean Neo-Confucianism founded in 1860 by Choe Je-u. The Donghak movement arose as a reaction to seohak, and called for a return to the "Way of Heaven". While Donghak originated as a reform movement and revival of Confucian teachings, it gradually evolved into a religion known today as Cheondoism in Korea under the third patriarch Son Byong-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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