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보 (712-770)
두보는 당나라 중기의 시인이자 관료로, 중국 문학사에서 이백(李白)과 함께 가장 위대한 시인으로 블린다. 두보가 특별한 이유는 화려한 풍류보다 전쟁·기근·피난·가난 같은 현실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그 시대 사람들의 고통을 시로 기록했기 때문이다. 특히 안록산의 난 전후로 사회가 무너지는 경험이 그의 시 세계를 깊게 만들었고, 이런 점 때문에 두보는 흔히 '시성(詩聖)'이라 불리며, '시로 쓴 역사'라는 뜻의 '시사(詩史)'라 불린다. 두보는 젊을 때 과거를 통해 관료가 되려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고, 전란 속에서 떠돌며 생활이 어려워지자 759년 무렵 청두로 가서 초가를 짓고 한동안 머물렀는데, 이 시기가 창작의 절정으로 꼽히며 이때 240편가량의 시를 남겼다. 대표 작품으로는 전란 속의 비애를 담은 <춘망(春望)>은 "나라는 망했어도 산천은 그대로인데, 성안의 봄은 풀과 나무만 깊었구나"라는 구절로 유명한 시다. 전쟁 중에 가족을 그리워하며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이 절절히 담겨 있다. <춘야희우(春夜喜雨)> "좋은 비는 내릴 때를 알아, 봄이 되니 바로 내리네"로 시작하는 이 시는 청두 초당 시절의 평온함을 보여주는 대표작이다.
Du Fu
Du Fu was a prominent Chinese poet of the Tang dynasty. Along with Li Bai, he is frequently called the greatest of the Chinese poets. His greatest ambition was to serve his country as a successful civil servant, but he proved unable to make the necessary accommodations. His life, like the whole country, was devastated by the An Lushan Rebellion of 755, and his last 15 years were a time of almost constant un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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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u Fu Thatched Cottage /두보초당

두보초당
두보초당은 두보가 759년부터 약 4년 동안 머물렀던 집터에 조성된 기념관이다. 전쟁을 피해 가족과 함께 청두로 온 두보는 지인의 도움을 받아 성 바깥에 작은 초가집을 지었다. 이곳에서 그는 '춘야희우(春夜喜雨)'를 포함한 명시 240여 수를 남겼다. 초당 구역은 고증을 통해 복원된 두보의 소박한 초가집으로 대나무 숲과 어우러진 소박한 모습이 시인의 삶을 대변한다. 붉은 담장과 대나무 숲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꽃길 화경은 두보초당에서 가장 유명한 포토존이다. 대아당에는 두보를 비롯한 중국 역대 유명 시인들의 조각상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Du Fu Thatched Cottage
In 759 Du Fu moved to Chengdu, built a thatched hut near the Flower Rinsing Creek and lived there for four years. The "thatched hut" period was the peak of Du Fu's creativity, during which he wrote two hundred and forty poems, among them "My Thatched Hut was torn apart by Autumn Wind" and "The Prime Minister of Shu". Du Fu Thatched Cottage is now a popular destination for Du Fu enthusiasts around the world to pay tribute to the po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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