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다오(청도)
5.4 광장
5·4 운동 (1919.5.4)


5.4 광장

5.4 광장은 중국 산둥성 칭다오(청도)의 랜드마크로 5.4 운동을 기념하기 위해 조성된 상징적인 장소다. 칭다오 시정부 청사 앞에 위치하며 바다를 마주하고 있어 관광객과 현지인 모두에게 사랑받는 명소다. 칭다오에 5.4 광장이 있는 이유는 5.4 운동의 도화선이 된 것이 바로 산둥성(칭다오 포함)의 이권 반환 문제'였기 때문이다. 칭다오는 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조차지였다가 일본으로 넘어가게 되었는데, 이를 되찾으려 했던 중국 민중의 열망이 5.4 운동으로 폭발했다. 즉, 칭다오는 5.4 운동의 정신이 깃든 역사적인 도시인 셈이다. 광장 중앙에는 칭다오를 상징하는 거대한 붉은색 나선형 조각상이 서 있는데 솟구쳐 오르는 바람의 형상을 통해 5.4 운동의 애국주의 정신과 민족의 힘을 상징한다.

May Fourth Square

May Fourth Square is a large public square in Qingdao's central business district. It is located between the new municipal government building and Fushan Bay and is composed of Shizhengting Square, the central square and the coastal 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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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 Wikipedia


ⓗ May Fourth Movement / 5.4 운동


5·4 운동 (1919.5.4)

5·4운동은 1919년 5월 4일 베이징에서 시작된 학생 중심의 반제국주의·민족주의 운동으로, 이후 상인·노동자까지 참여한 전국적 시위·동맹휴업·불매운동으로 번진 사건이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열린 파리 강화 회의(1919)가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 당시 승전국 편에 섰던 중국은 독일이 차지하고 있던 산둥성의 이권을 돌려받을 것으로 기대했지만 열강들은 일본의 요구를 인정하며 산둥성 이권을 일본에게 넘겨주는 불평등한 결정을 내렸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중국 국민, 특히 지식인과 학생들은 무능한 정부와 제국주의 열강에 분노하며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1919년 5월 4일, 베이징의 대학생 3,000여 명이 천안문 광장에 모여 대규모 시위를 벌였고 학생들로 시작된 시위는 노동자들의 파업으로 이어지며 전국적인 투쟁으로 번졌다. 거센 민중의 압력에 굴복한 중국 정부는 파리 평화 조약 조인을 거부하고, 친일파 관리들을 파면했다. 5.4 운동은 두 달 전 일어난 한국의 3.1 운동에 큰 영향을 받았다. 당시 중국 언론들은 3.1 운동을 대대적으로 보도하며 중국인들의 민족 의식을 자극했다. 이 운동을 계기로 중화민국 정부의 정당성이 약화되고, 훗날 중국 공산당이 창설되는 사상적·인적 토대가 마련되었다.

May Fourth Movement (1919.5.4)

The May Fourth Movement was an anti-imperialist, cultural, and political movement growing out of student participants in Beijing on 4 May 1919, protesting against the Chinese government's weak response to the Treaty of Versailles, especially allowing Japan to receive territories in Shandong which had been surrendered by Germany after the Siege of Tsingta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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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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