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준 (1883-1921)
1907년 세브란스의학교(현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에 입학하여 1911년에 제 2회로 졸업하였다.
김필순, 주현칙과 함께 안창호 선생이 만든 “청년학우회’에 가입하여 독립운동을 하였다. 세브란스 인턴으로 근무하던 중 1912년에는 중국 남경으로 망명하여 ‘기독회의원’에서 의사로 일을 하다가 처사촌이 된 애국지사 김규식 선생의 권유로 1914년에 몽골 후레로 가서 ‘동의의국’ 이라는 병원을 개설하였다.
특히 ‘화류병’퇴치에 앞장섰고, 몽골 마지막 황제 주치의가 되었으며, 1919년에는 동골로부터 ‘오르데니-인 오치르’라는 최고의 훈장을 받았다.
1921년 2월 당시 일본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던 러시아 백위군 운게른 부대에 의하여 피살당하니 38세의 아까운 나이였다. 선생의 묘는 성산인 보그트산에 있다고 전하며, 1980년 한국정부는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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