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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봉 (金元鳳 1898-1958)
김원봉은 경남 밀양 출신으로 1919년 중국 길림에서 젊은 독립운동가들과 함께 의열단을 결성한다. 이후 조선의용대 창설, 대한민국임시정부 군무부장 등을 맡아 항일 투쟁에 큰 공헌을 한 인물이다. 의열단은 '조선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투쟁'을 기치로 삼았고, 조선총독부 폭파 계획, 동양척식주식회사 습격, 관공서 폭탄 투척 등 고위 관료·침략 기관을 겨냥한 의열 투쟁을 전개했다. 1930년대 들어 김원봉은 보다 조직적·체계적인 항일을 위해 조선혁명간부학교를 세워 군사·정치 간부를 양성했다. 1938년에는 조선의용대를 창설하여 중국 전선에서 일본군과 싸웠고, 1942년 이후 일부 세력이 대한민국임시정부에 합류하여 한국광복군 편입의 기반을 마련했다. 해방 후 김원봉은 남한의 정치적 혼란 속에서 우익 세력과 갈등을 겪고 북으로 건너갔다. 북한 정권에서 국가검열상·노동상 등 고위직을 맡았으나, 이후 숙청된 것으로 추정된다.
Kim Wonbong (1898-1958)
Kim Won-bong was a Korean anarchist, independence activist, and statesman from North Korea. In February 1919, Kim entered the Shinheung Military Academy and underwent military education for six months, after which he dropped out of the academy. On November 9 of the same year, Kim organized a Korean nationalist underground organization known as the Korean Heroic Corps, with Yang Gun-ho, Gwak Jae-ki, Han Bong-geun, Kim Ok, and others. Among the Heroic Corps aims were the assassinations of Japanese officials and their collaborators, coupled with attacks on Japanese bas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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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uiyeol Memorial Hall / 의열기념관

의열기념관
1898년 경남 밀양군 부북면 감천리 57번지에서 태어난 김원봉은 어린 시절부터 항일 독립 의식이 투철했다고 한다. 보통학교(초등학교)에 다닐 때 일본 왕의 생일 축하 행사를 위해 나눠준 일장기를 화장실에 처박았을 정도. 학교가 발칵 뒤집혔고, 김원봉은 자퇴했다. 이 일을 함께한 인물이 이웃에 사는 동생 윤세주다. 두 사람은 뒷날 함께 의열단을 만들면서 항일 독립운동의 동지가 된다. 의열기념관 바로 옆 공터가 윤세주의 생가 터다. 지금 이곳에는 미처 해방을 보지 못하고 일제와 전투 중에 눈감은 윤세주 열사를 기념하는 비석이 있다.
[자세히보기]출처 : 한국관광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