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
세종대왕
1397-1450 / 영릉 (세종,소헌왕후)



세종대왕 (1397.5.15-1450.3.30)

세종은 조선의 제4대 국왕으로, 태종과 원경왕후의 아들이다. 형인 양녕대군이 폐세자가 되자 세자에 책봉되었으며 태종의 양위를 받아 즉위하였다. 세종은 과학 기술, 예술, 문화, 국방 등 여러 분야에서 다양한 업적을 남겼다. 백성들에게 농사에 관한 책(농사직설)을 펴내었지만 글을 몰라 이해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는 효율적이고 과학적인 문자 체계인 훈민정음(訓民正音)을 창제하였다. 훈민정음은 언문으로 불리며 왕실과 민간에서 사용되다가 20세기 주시경이 한글로 발전시켜 오늘날 한국어의 공식 문자로서 널리 쓰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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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Wikipedia

Sejong the Great (1397.5.15-1450.3.30)

Sejong the Great was the third son of King Taejong and Queen consort Min. He also personally created and promulgated the Korean alphabet Hangul,encouraged advancements of scientific technology, and instituted many other efforts to stabilize and improve prosper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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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 Wikipedia







ⓤ Yeongneung / 영릉



영릉(英陵)

영릉(英陵)은 조선 4대 세종과 소헌왕후 심씨의 능이다. 영릉은 조선왕릉 중 최초로 같은 봉분에 왕과 왕비를 같이 모신 합장릉의 형식으로 앞에서 바라보았을 때 왼쪽에 세종, 오른쪽에 소헌왕후를 모셨다. 능침 배치는 『국조오례의』의 예를 따랐으나, 봉분은 병풍석을 생략하고 난간석만 둘렀다. 병풍석이 생략되자 병풍석에 새기는 십이지신상은 난간석에 문자로 새겼다. 내부 방은 석실(돌방) 대신 회격(灰隔, 석회와 가는모래, 황토를 섞은 혼합 물질)으로 만들었고, 석상(혼유석)은 2개를 배치하였다. 원래 영릉은 1446년(세종 28) 소헌왕후가 먼저 세상을 떠나자 현 서울 헌릉과 인릉 경내 인릉 자리에 조성되었고, 4년 뒤 세종이 세상을 떠나자 영릉에 합장하였다. 그러나 영릉이 풍수상 불길하다고 하여 세조 대부터 영릉을 옮기려고 하였으나 실현되지 못하였다가 1469년(예종 1)에 현재의 자리로 옮겼다. 옮기면서 옛 영릉에 있던 능침 석물과 신도비는 땅에 묻었고, 여주로 옮기면서 능침의 석물은 다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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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국가유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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