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청의 난 (1135)
묘청의 난은 1135년(인종 13), 묘청 등이 서경(평양)에서 일으킨 반란이다. 승려 묘청을 비롯하여 문신 정지상(鄭知常), 일자(日者)인 백수한 등 서경인들을 주축으로 하는 일군의 세력이 당시 이자겸의 난으로 야기된 정치적 혼란을 틈타 지리 도참설을 근거로 삼아 개경에서 서경으로의 천도를 주장하고 칭제건원, 금국정벌까지 주장하였다. 그러나 개경 조정의 반대에 부딪치자 서경을 중심으로 반란을 일으켰다. 묘청 등의 반란은 김부식이 이끄는 개경 토벌군에 의해 진압되었다.
[자세히보기]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Myocheong (?-1135)
During the reign of king Injong of Goryeo, Myo Cheong argued that Korea had become weakened by Confucian ideals. His views directly conflicted with Kim Bu-sik, a China-oriented Confucian scholar. On a broader scale, this represented the ongoing struggle between the Confucian and Buddhist elements in Korean society. It was during this period an organized Jurchen state was putting pressure on Goryeo. The trouble with the Jurchens was partly due to Goryeo's underestimation of the newly established state and the ill treatment of its envo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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