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치원 (857-?)
최치원은 신라 말기의 문신, 유학자, 문장가이다. 본관은 경주이고 자는 고운, 해운, 해부이며, 시호는 문창이다. 868년 당나라로 건너가 과거에 급제한 후 당나라의 관료로 생활하였다. 신라 말 삼최(三崔) 중 한 사람으로, 문묘에 종사된 해동 18현 중의 한 사람이다. 6두품 출신으로서 12세의 나이로 당에 유학하여 6년 만에 당의 빈공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였으며, 황소의 난이 일어나자 절도사 고병의 막하에서 "토황소격문"을 지어 당 전역에 문장으로 이름을 떨쳤다. 28세에 귀국하여 진성여왕에게 정치개혁안인 시무 10조를 올렸다. 그러나 진골 귀족들의 반대로 높은 관직에 오르지 못하는 골품제에 한계를 느끼고 자신의 이상을 채 펼쳐보지도 못한 채 관직을 버리고 은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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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oe Chiwon (857-?)
Choe Chiwon was born in the Saryang district of the Silla capital of Gyeongju in 857. He was of the so-called "head rank six" class, a hereditary class in Silla's stringent bone rank system affixed to those of mixed aristocratic and commoner birth. As a member of head rank six, Choe was restricted in the level of office he could att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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