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두(성도)
제갈량
諸葛亮 (181-234)


제갈량 (181-234)

제갈량은 중국 삼국시대 촉한의 승상이자 시대를 초월하여 '지혜와 충절'의 화신으로 추앙받는 인물로 자는 공명(孔明), 호는 와룡(臥龍)이다. 샹양 고융중에서 은거하던 제갈량은 자신을 세 번이나 찾아온 유비의 정성에 감동하여 세상 밖으로 나와 유비에게 제안한 '융중대책(천하를 셋으로 나누는 전략)'은 이후 촉한 건국의 청사진이 되었다. 적벽대전에서 유비와 손권의 동맹을 끌어내고 기막힌 화공 전술을 통해 조조의 대군을 격파하며 삼국 정립의 기틀을 마련했다. 유비 사후 어린 황제 유선을 보좌하며 위나라를 정벌하기 위해 북벌에 나서며 황제에게 올린 '출사표'는 "이 글을 읽고 눈물을 흘리지 않으면 충신이 아니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절절한 충심이 담겨 있다. 북벌 중 결국 과로로 인해 오장원 진중에서 5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죽기 직전까지 "몸을 굽혀 모든 힘을 다하고, 죽은 뒤에야 멈춘다"는 자세로 소임을 다했다. 삼고초려, 수어지교(유비와의 관계), 칠종칠금(맹획을 일곱 번 잡고 놓아줌), 읍참마속(법을 위해 아끼는 부하를 베다) 등 수많은 성어가 그에게서 유래했다.

Zhuge Liang (181-234)

Zhuge Liang was a Chinese politician, military strategist, writer, engineer and inventor. He served as the Imperial Chancellor  and regent of the state of Shu Han during the Three Kingdoms period. He is recognised as the most accomplished strategist of his era, and has been compared to Sun Tzu, the author of The Art of W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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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 Wikipedia





ⓢ Wuhou Temple / 무후사


무후사

무후사는 삼국시대 촉한의 승상 제갈량을 기리는 사당으로 유비의 묘인 혜릉과 결합된 세계 유일의 군신 합사 사당이다. 원래는 유비의 사당과 제갈량의 사당이 분리되어 있었으나 명나라 때 통합되었는데 신하인 제갈량의 명성이 워낙 높아 사당 전체를 '무후사'라 부르게 되었다. 회랑을 따라 유비, 관우, 장비뿐만 아니라 조운, 마초 등 촉한을 이끌었던 28명의 문신과 무신 조각상이 세워져 있어 삼국지 영웅들을 직접 대면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제갈량이 북벌을 떠나기 전 유비의 아들 유선에게 올린 눈물의 상소문 '출사표'가 새겨진 비석은 무후사에서 반드시 봐야 할 보물이다. 유비의 무덤인 혜릉으로 가는 길에는 대나무 숲과 붉은 진흙 벽이 어우러진 '홍벽' 길이 있는데 무후사에서 가장 사진이 잘 나오는 명소로 인생샷을 찍으려는 여행자들로 항상 붐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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