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화강 사건 (1911.4.27)
신해혁명 직전인 1911년 4월 중국 혁명 동맹회의 황싱 등이 광둥에서 일으킨 무장 항쟁. 이로부터 6개월 후 청나라는 멸망하였다. 중국동맹회를 세운 쑨원은 세력을 확충하고 세계를 일주하며 화교들에게 군자금을 모았는데 우창 봉기 전까지 그의 군자금은 140만 냥에 달했다. 혁명의 동조자가 늘어나면서 일각에선 혁명의 시기가 가까워졌다는 성급하고도 급진적인 관측이 나왔다. 하지만 혁명파에게는 아무런 대책도 없었다.... 청군은 혁명파의 시체 72구를 연고 없는 시체로 취급하여 공동묘지에 장사지내기로 하였다. 그러나 반달이라는 사람이 광저우에 황화강이라는 곳에 묘지로 제공하여 그곳에 합장했는데, 역사적으로 이들을 72열사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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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cond Guangzhou Uprising (1911.4.27)
The Second Guangzhou Uprising, known in Chinese as the Yellow Flower Mound Uprising or the Guangzhou Xinhai Uprising, was a failed uprising led by Huang Xing and his fellow revolutionaries against the Qing Dynasty in Guangzhou. It is honored in Guangzhou's Yellow Flower Mound or Huanghuagang 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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