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
사도세자
1735-1762 / 융릉



사도세자 (1735-1762)

영조의 둘째 아들로 생후 1년만에 왕세자로 책봉되었으며 1749년 어명으로 대리청정을 시작하였으나 노론, 부왕과의 마찰과 정치적 갈등을 빚다가 1762년(영조 38년) 어명으로 뒤주에 갇혀 아사하였다. 사후 지위만 복권되었고, 양주 배봉산에 안장되었다가 다시 아들 정조에 의해 경기 화성시 융릉에 안장되었다.

[자세히보기]

출처 : Wikipedia

Crown Prince Sado (1735-1762)

Crown Prince Sado was born Prince Jangheon, the second son of the Korean king Yeongjo. Due to the prior death of his older half-brother Crown Prince Hyojang, the new prince was the probable royal heir. However Prince Sado was not given an opportunity to reign. At the age of 27, he was executed by order of his father, and died of starvation by being confined in a rice chest. His father gave him the posthumous title Sado, meaning "Thinking of with great sorrow."

[Learn more]

Source : Wikipedia










ⓤ Yunggeolleung / 융릉



융릉(隆陵)

융릉은 황제로 추존된 장조와 헌경황후 홍씨의 능이다. 융릉은 한 봉분 안에 황제와 황후를 같이 모신 합장릉(合葬陵)의 형식이다. 1762년 장조(사도세자)가 아버지 영조의 명으로 뒤주에 갇혀 세상을 떠나자, 현 서울 동대문구 배봉산에 묘를 조성하였고, 이후 무덤을 수은묘라 불렀다. 1776년 정조는 왕위에 오른 후 아버지에게 장헌세자라는 존호를 올렸고, 묘를 원으로 높여 이름을 영우원이라 하였다. 이는 장헌세자가 왕세자의 신분도 있었지만, 왕의 생부이기 때문에 무덤의 이름을 원으로 정한 것이다. 이후 정조는 배봉산에 있던 영우원을 1789년(정조 13) 수원 화산인 현재의 자리로 옮기면서 원의 이름을 현륭원으로 바꾸었다. 1815년(순조 15) 헌경황후(혜경궁)가 세상을 떠나자 다음 해 현륭원에 합장되었고, 대한제국 선포 후 1899년 장헌세자가 장종으로 추존되자 원을 능으로 높여 융릉이라 하였다.

[자세히보기]

출처 : 국가유산청

Yunggeolleung

Yungneung is the joint tomb of King Jangjo (1735-1762) and Queen Heongyeong (1735-1815). King Jangjo was the father of King Jeongjo, the 22nd ruler of the Joseon Dynasty. King Jangjo was the second son of King Yeongjo, the 21st ruler of the Joseon Dynasty. He was installed as a Crown Prince in 1736. As the Crown Prince, he administered the state affairs on behalf of his father and showed great capability in various fields. However, he died in 1762 after being locked in a wooden rice chest by the orders of his father, King Yeongjo.

[Learn more]

Source : KOREA TOURISM ORGANIZATION

  •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h·map story

my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