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러시아 공사관
구 러시아 공사관은 한러수호조약이 체결된 1885년에 착공되어 1890년 준공되었다. 이 건물은 경복궁과 경운궁 등 서울 4대문 안을 내려다 볼 수 있는 정동의 고지대에 입지했으며, 그 건물 규모나 대지 규모에서 미국·영국·프랑스·독일 공사관보다 컸다. 을미사변으로 명성황후가 일본에 의해 시해된 후, 이에 위협을 느낀 고종은 1896년 2월 세자(순종)와 함께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하게 된다. 이 때, 덕수궁과 러시아 공사관을 잇는 지하의 비밀 통로로 이동하였으며, 이 통로는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만큼 좁았던 관계로 긴박했던 역사를 그대로 드러내보이고 있다. 이 사건을 아관파천(俄館播遷)이라 부른다. 러시아 공사관은 국권 피탈 이후 1925년부터 해방 이후 1950년까지 소비에트 연방 영사관으로 이용되기도 하였다. 1950년 6.25 전쟁으로 인해 건물의 대부분이 파괴되었으며 현재는 외벽 일부와 3층 전망탑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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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orea Royal Refuge at the Russian Legation (1896.2.11) / 아관파천
아관파천 (1896.2.11)
아관파천은 1896년 2월 11일부터 1897년 2월 20일까지 1년 9일간 조선 고종과 세자가 경복궁을 떠나, 어가를 러시아 제국 공사관으로 옮겨서 파천한 사건이다. 1895년 을미사변으로 조선 국민의 대일 감정이 극도로 악화하고 각지에서 의병이 일어나 전국이 소란해지자 러시아 공사 베베르는 공사관 보호라는 명목으로 수병 백명을 서울로 데려왔다. 이에 친러파인 이범진 등은 베베르와 공모하여 1896년 2월 11일에 국왕의 거처를 궁궐로부터 지금의 서울특별시 중구 정동에 있는 러시아 공사관으로 옮겼다...아관파천에 대해서는 일본 세력으로부터 벗어나려 했던 그의 의도를 봐야 한다는 평가도 있지만, 자주적이지 못한 외세 지향의 행동이라는 평가가 주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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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royal refuge at the Russian legation (1896.2.11)
Korea royal refuge at the Russian legation also called Agwan Pacheon in Korean, occurred after the First Sino-Japanese War during a period of factional confrontation within the Korean royal court. King Gojong of the Joseon Dynasty and his crown prince took refuge from the Gyeongbok Palace at the Russian legation in Seoul, from which they controlled the Korean government for about one year from February 11, 1896, to February 20, 189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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