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금대 전투 (1592.6.7)
이 때 종사관 김여물 등이 “적은 군대로 왜적의 대군을 방어할 곳은 마땅히 지형이 험한 조령뿐이다.”고 하였다. 그러나 신립은 그 말에 따르지 않고 “이곳에서는 기병을 쓸 수 없으니 마땅히 평원에서 일전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26일 그는 드디어 충주의 서북 4㎞ 지점에 있는 탄금대에 배수진을 쳤으나, 앞에 논이 많아 말을 달리기에 불편하였다. 27일 고니시가 거느린 왜군은 이미 조령을 넘어 단월역에 이르렀다. 28일 새벽 왜군은 부대를 나누어 본진은 충주성에 돌입하고, 좌군은 달천 강변으로 숨어 내려왔으며, 우군은 산으로 숨어 동쪽으로 나가 강을 건넜다. 신립은 당황해 충주성으로 급히 말을 달렸으나, 군대의 전열이 미처 정비되기도 전에 성안의 왜군이 나팔소리를 신호로 일제히 출격, 조선의 관군은 대패하였다...
[자세히보기]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Battle of Chungju
The Battle of Chungju or the Battle of Tangeumdae was the last battle of the Chungju Campaign fought between the Koreans and Japanese during the Japanese invasion of Korea in 1592. Chungju is located just south of the Han River and Seoul, Korea's capital. The defeat of the Korean forces at Chungju led directly to the capture of the capital of Hanseong by Japanese forces shortly thereaf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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